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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안의 영국에서 미국으로 #6 본문

언어/유학

홍콩 안의 영국에서 미국으로 #6

앤젠시 2021. 2. 24. 22:00

영국계 학교와 다르게 미국계 학교는 입학시험이 일 년에 한번 있고 새로운 애들이 새 학년이 시작할 때 한꺼번에 다 들어온다. 그래서 그런지 영국계 학교보다는 애들이 개방적이고 더 잘 대해준다. 새로운 학생으로서 소외감 같은 것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미국계 학교 학생들은 90% 이상이 미국인, 미국계 중국인, 미국계 한국인 등이었고, 한국인들도 한국어를 어눌하게 구사했기 때문에 한국인들끼리도 영어로 대화하였다. 이 학교는 들어가기가 힘든 만큼 학교 커리큘럼과 공부 수준이 매우 높았다. 그런 학교에서 영어라는 언어의 노출 기간이 제일 짧았던 나에게는 언어의 장벽이 컸던 만큼 같은 학년 친구들보다 두 배로 열심히 하려고 했다. 이 학교에 와서 진짜 공부라는 것을 제대로 해보게 된 것 같은데, 미국계 학교에서는 매일 학교 숙제 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영국계 학교에 비해 몇 십 배는 학교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은 것 같다. 단순한 문제풀기 숙제들이 아니라 창의력을 요하는, 답이 없는 프로젝트식 과제들이 대다수였다. 이를테면 사회과목 기말고사로는 '한 학기 동안 배운 다양한 주제를 총망라하여 시, 소설, 에세이를 작성하든 그림을 그리거나 영상/노래를 직접 만들든 본인이 원하는 방법으로 한 학기의 과정을 정리하여 제출하라'였다. 번뜩이는 창의력도 없었고 다른 학생들처럼 영어를 능숙하게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실력도 아직은 아니었기 때문에 더 힘들었던 것도 같다.

미국계 학교 처음 들어가서 느낀 것은 영국계 학교보다는 시설이 별로고 매번 어셈블리 때마다 종교적 이야기와 기도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계 학교는 루터계 개신교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모든 종교를 다 포용한다고는 하지만 기독교적인 행사와 기도를 많이 하곤 했다. 미국계 학교가 첫 학교 및 영국계 학교와 달랐던 점은 수업시간이 80분씩으로 매우 길고 남들과 똑같은 수업을 같이 받으러 가는 게 아니라 카운슬러를 통해서 대학생처럼 각자 필수과목과 원하는 과목을 수강하게끔 해서 학생들 개개인이 마치 대학생들처럼 다른 시간표를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80분이라는 긴 수업시간은 별로였지만 자유롭게 과목을 선택하여 수업 때마다 다른, 다양한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은 좋았다. 또한 학교 측에서는 학교 과제가 워낙 많고 어렵기 때문인지 free period라는 소위 말하는 ‘공강’은 최소한 하나는 있게끔 하여 카운슬러도 시간표를 짤 때 수업시간 하나 이상은 비어놓도록 했다. 이렇게 이틀에 한번 하루에 1시간 20분씩, 어쩔 때는 2시간 40분씩 아무거나 할 수 있는 자유 시간을 갖게 되었고 그 시간을 애들하고 농구하거나 놀거나 숙제하거나 공부하는데 사용했다. 이렇게 빡세게 하면서 성적이라도 좋게 나오면 불만이 없겠는데, 이 학교는 성적도 진짜 짜게 주었다. 여름 방학 때 한국의 학원을 가서 미국에서 온 애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다들 성적이 너무 안 좋다고 걱정을 해서 어느 정도냐고 물어보면 다들 GPA 4.0 만점에 3.7은 되더라. 그런데 이 학교는 4.0 만점에 3.5이상 받기도 쉽지가 않다. 오죽하면 12학년들의 고등학교 4년 전체 평균 학점이 3.5 이상인 학생이 전체학생수의 25%정도밖에 안됐으니…. 나도 처음에 미국계 학교에 들어가면서 내신을 다 개판 쳐놓는 바람에 만회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래도 공부를 제외한 모든 것은 영국계 학교에 있을 때보다 훨씬 좋았고 재미있었다.

들었던 수업 중 아직도 기억나는 수업은 Photography & Digital Media였다. 졸업하기 전까지 Arts 관련된 수업, 즉 음악, 미술, 드라마 수업을 각각 하나씩 들어야했는데 음악, 미술 등의 이론만을 위주로 배우는 Fine Arts Survey (FAS)를 포함한 다른 다양한 수업들이 있었다. 이 수업을 들으면 예술 관련된 수업은 더 이상 안 들어도 됐었기 때문에 FAS를 듣는 학생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내 시간표와 이 수업 시간대가 맞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사진 관련된 수업을 수강하게 되었는데, 이 수업은 DSLR 카메라를 이용해 사진을 찍은 후, 여러 화학약품을 이용해 직접 사진을 인화하는 수업이었다. 겉보기엔 까맣기만 하던 필름이 한 장의 사진으로 인화되는 과정을 몸소 느끼고 체험하면서 정말 신기했고 재미있었다. 나의 손재주가 부족한 탓인지 완벽한 사진들은 인화해내지 못하였지만 뜻깊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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