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바쁘게 지내던 어느 날, 조만간 한국으로 가야된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원래 내 계획은 미국계 국제학교에서 졸업을 하고 홍콩/미국/영국 등 해외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바뀐 상황으로 인해 몇 년간 손도 안대본 한국 공부를 하기 위해 한국계 국제학교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나는 모든 것을 접어둔 채 미국계 국제학교를 떠나야 했다. 지금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새로운 학년에서의 내 Interim 여행지는 요르단으로 결정되었는데 그 전에 홍콩을 떠나버려서 Fiji, South Africa에 Jordan까지의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요르단 역시도 정말 최고의 여행이 되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미국계 학교를 막상 떠나자니 시원섭섭하기도 하고 지금까지 한 것들이 아깝기도 하고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렇지만 힘들었던 때도 정말 많았지만 선의의 경쟁자이며 여러 추억을 함께했던 동료 학생들, 훌륭한 멘토였던 선생님들과의 생활과 경험은 나로 하여금 국제적인 마인드를 갖게 만들었고 세계인과 소통하고 배울 수 있는 정말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한국에 살았다면 아무리 돈을 들여도 못했을 귀중한 경험을 하게 해준 학교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기존 계획과는 달리 나는 겨울방학 때 결국 한국계 국제학교에 상담 겸 입학시험을 보러 가게 되었다. 시험이라고 해봤자 지원자 다 들여보내는 형식적인 시험이었지만 나는 영어 98점, 수학 60점, 국어 10점을 받았다. 너무나 생소한 국어 작품들이 많았고 독해 지문 하나 읽고 문제를 풀려고 해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홍콩에 간 이후 너무나도 오랫동안 국어 공부를 해 본 적도 없었고 영국계 국제학교에 다닐 때부터는 한국어 자체도 별로 쓸 기회가 없던 나는 국어는커녕 한국어로 말하는 것도 약간 서툴렀다. 긴 문장을 말하고자 해도 한꺼번에 조리 있게 말을 못하고 중간에 말하다 버벅거리며 끊기는 경우도 있었고 말이 마음처럼 잘 나오지도 않았다. 역시 모국어도 꾸준한 연습 없이는 쇠퇴하기 마련인가보다. 그러나 한국계 국제학교에서 20여명의 반 학생들과 적게나마 대화를 하고 수업을 들으며 말하기나 국어 실력도 조금씩 나아졌다.
한국계 국제학교에서 반 친구들과 강제 야자를 하며 놀던 어느 날, 곧바로 한국으로 돌아가는게 낫겠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국계 국제학교는 고등학생 교실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을 노는 분위기의 환경이었을 뿐만 아니라, 홍콩은 월세 집값도 살인적으로 비쌌고 내가 다닌 국제학교 학비들도 정말 비쌌다. 그것도 내가 미국계 국제학교에 홀로 남아 졸업하지 못했던 원인 중 하나였는데 미국계 국제학교는 당시 1년 학비만 2500만원 이상이어서 자비로 다니기에는 경제적으로 곤란했다. 홍콩에 조금만 더 살았다면 홍콩 영주권이 나와서 비자 없이 계속 살 수도 있고 여러 혜택도 있었기에 나는 어떻게든 영주권을 받고 싶었고, 홍콩에서의 생활이 정말 좋았던 만큼 홍콩에서 계속 살고 싶었다. 그리고 한국에 가서 학교 다니기도 정말 싫었고 거부감도 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한국계 국제학교에서는 한 달만 다니고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짧게 다닌 한국계 국제학교였지만 새로운 친구들을 알게 되어서 좋았고 한국 귀국 후에도 우연히 마주칠 기회들이 있어서 반가웠다. 주말 빼고 휴일 빼면 한국계 국제학교에 다닌 날도 며칠 안 되지만 그 때의 인연으로 한국에 가서도 같이 놀이공원도 가게 되었고 우리를 생각해 주시던 여러 선생님들도 알게 된 의미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홍콩에서의 여러 국제학교 생활들은 내가 앞으로의 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긍정적인 자양분을 디딤돌 삼아 전진할 수 있도록 나를 180도 변화시켰고, 홍콩은 나에게 굉장히 뜻깊은 곳이 되었다.